~매일매일이 탐폰런~

불쾌한 일을 꾹참고 쳐내야 하는데 하기 싫을 때, 뭐든지 축축 쳐지고 지루할 때, 그리고 비슷한 감정상태와 어려움에 있는 이웃의 존재를 믿고 싶을 때 나는 탐폰런을 한다. 그 플레이 시간 안에 실제 생리기간도 걸쳐 있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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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룰과 진행,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주인공은 어둑어둑한 밤거리를 달리고 있고 그녀의 앞길에는 괴한들이 나타난다. 이들과 부딪치면 가지고 있는 탐폰을 강탈당하고, 이들에게 탐폰을 발사FIRE 하면 점수SCORE가 올라간다. 점프JUMP를 하면 다가오는 남자들을 회피할 수도 있고 공중에 떠있는 박스로부터 더 많은 탐폰을 확보할 수도 있다. 점수증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써 남자들이 나타는 족족 발사를 하면 탐폰을 빨리 잃게되고, 발사 없이 점프로만 남자들을 회피한 후 탐폰을 무조건 아껴만 두려고 해봐도 등에 로켓부스터를 달고 하늘을 날고있는 남자들과 언젠가는 부딪치게 된다. 남자들과 일단 부딪치면 주인공은 HEY! 라는 불쾌한 경고소리를 내고, 그들에게 보유한 탐폰을 모두 뺏겨 0이되면 게임오버가 된다.

 


실제 게임 플레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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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렁물렁한 탐폰으로는 실제로 사람을 폭행하거나 살해할 수 없지만 이 게임 속 적들에게는 상당히 효과가 있다. 탐폰과의 접촉 한번에 우수수 게임 화면 밖으로 떨궈지는 괴한들을 뒤로 하고 왼쪽 길에서 오른쪽 길로 단조롭게 달리고 있는 여캐를 5분여간 보고있자니 약간 아찔하고 메갈리안들의 ‘미러링’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게임은 왜 엔딩이란게 없는가? 혹시 이 여캐는 생리가 안끝나는 병에 걸렸나? 왜 게임배경의 하늘이 심야의 새까만 색에서 동틀녁의 보라빛이 될때까지 내가 이 짓을 계속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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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17 오전 4시 12분을 기준으로 탐폰런은 애플 게임센터에서 총 145,772명의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다. Heavy Flow, Tampon Obsessed, Menstrual Master, Ada Lovelace*같은 이름의 플레이어들은 포인트를 만들고 그 기록은 다시 순위표를 구성하며 때로는 서로의 ‘도전과제’를 공유하기도 한다. 나는 ‘Dorothy.Powers.1991’라는 이름의 여성으로부터 친구신청을 받기 전까지는 이 같은 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전혀 없었다. 도로시가 그 유명한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속 주인공을 말하는 건지? 실명이 정말로 도로시인건지? 이런 너무 멀쩡한 질문들은 즉각적으로 느꼈던 반가움과 호기심에 비하면 별로 대단한건 아니고 재미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요청을 즉시 수락했다.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과 적은 대가를 치르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이때의 ‘친구’는 반쯤 죽은 단어이다. 이런식의 온라인 기반 관계는 나 이외에도 다른 많은 여자들이 언제든지, 또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다만 아직 내가 국내에서 나 말고도 탐폰런을 하고 있는 한국 여성의 이야기를 들은적이 없고, ‘도로시’는 게임센터 알림창이 처음으로 보여준 미지의 이웃이었기 때문에 이 우연은 값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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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탐폰을 착용하고 있는 여자는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에 존재하고 있으며 탐폰 제품의 구매 통계로 그 숫자가 가시화 될 수 있다. 하지만 탐폰런을 알고 있으면서, 또 실제로 직접 플레이를 해본 여자들의 숫자는 그보다 한참을 못미칠 것이다.** 이 갭은 내게 중요하다. ‘생리대’를 자신의 성기 표면에만 닿게 하는 게 아니라 ‘탐폰’을 자신의 질 속에 삽입한 여자들에 대해서 사람들, 여성인 사람 스스로도 이질감과 역겨움을 느끼는 관성이 내게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탐폰의 메뉴얼과 특징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은 적도 없고, 또 상당히 뒤늦게 그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나서도 적극적으로 구매욕이 생기진 않았던 사람이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을 좋아하고 또 귀엽다고 생각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아프거나 피가 새어나오진 않을까?
어머니와 생리대를 공동으로 두고 쓰는 수납장에 탐폰이 있으면 말싸움이 벌어지지 않을까?
또 다시 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멸적인 언사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은 나의 무지와 내가 처한 한국적 상황, ’20대가 다 끝나도록 부모의 집으로부터 독립을 못한 성인여성’을 바탕으로 계속 생겨난다.

여성인권의 향상에 동의하는가?

라는 질문에 YES라고 자신있게 답하지만,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타부를 지금당장 끝장내야 한다고 보는가?

라는 질문에는 내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학습한 수치심이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그래서 내게는 탐폰런 같은 부스터 장치가 필요하다. 현실 세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월경 타부/금기/공포/낭설에 맞서기 앞서 누군가에게 유쾌하게 설득당하고 또 용기를 내고 싶을때 무언가 손에 붙잡고 시작버튼을 눌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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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 게이머는 아닌 나로선 현재 탐폰런 1위의 기록을 보유한 ‘markus gh’ 라는 남성이 어떻게  1,000,000,000,069라는 비현실적인 포인트를 따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아이폰 탈옥 후 크랙 패치 프로그램을 돌린게 아닐까 의심스러운데 오로지 노력만으로 저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비현실적이다. 탐폰런 정도로 지극히 단순한 규칙과 보상체계를 가진 게임안에서 고득점의 결과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지루하다. 개발자는 스토리텔러가 아니고 또 게임이 소설은 아니기 때문에, 게이머가 게임 밖에서 다른 이야기와 서브텍스트를 굳이 끌어오지 않는이상 ‘재미’는 순식간에 고갈되버린다. 월경에 대한 타부를 가지고 그간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뭘해왔는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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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회 게스트를 초대해 월경과 페미니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토크를 나누는 팟캐스트 ‘Crimson Wave’ . 사진은  에피소드 21의 게스트 코미디언 Sara Hennessey(중앙)과 두 고정 진행자,  Jess Beaulieu와 Natalie N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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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내가 크림슨 웨이브에서 가장 좋아했고 이미 여기저기에서 인용해 써먹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Episode 38 한나 호건 Hannah Hogan 편에서

어떤 파티에서 신나게 놀다가 새하얀 소파에 앉았다 일어나보니 피가 묻어있었다거나 – 자기가 아끼는 청바지에 조그맣게 피가 얼룩져있었는데 옆에 있던 남자친구도 눈치채지 못했고 그 상태로 하루종일 돌아다녔다거나-

이런 식의 약간 민망한 얘기를 코미디언인 한나의 입담과 진행자 Jess Beaulieu와 Natalie Norman의 웃음소리, 감탄소리를 뒤섞어 듣고 있으면서 나는 피식피식 웃게 된다. 누군가에게 상당히 욕을 먹거나 이상한 여자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경험인데도, 일단 웃긴 것이다. 그 얼룩들은 내 몸안에서 나온것이고 또 이런 사고는 생각보다 쉽게 일어날 수있는 것임에도 나의 부모와 친구, 그리고 많은 남자들은 이에 대해 얼마나 호들갑을 떨 것인가? 그날 유독 착용한 패드에 비해 생리양이 많았다거나, 약간 헐렁한 사이즈의 거들을 입고있었다거나, 구구절절 원인을 설명하면서 합리적인 이유로 그들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성인 여성이니까 나의 부주의함과 지저분한 실수에 대해 일단 사과를 해야하는게 맞지만, 수치심과 죄책감을 굳이 영원토록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으므로 ‘과하지 않은 정도’를 계속 계산도 하면서. 아슬아슬했던 해프닝들이었고 약간 악몽같은 기억이 될 수도 있지만 ‘이쯤하면 넘어갈 일이 될수는 없나?’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쪽을 더 선호하면서. 주변의 말들을 적당히 쳐내고 내가 속 편한대로 생각하면서. 서서히 잊는것이다. 그러지 말아야할 이유는 언제나 많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그러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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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는 일러스트레이터 씨냉의 ‘코르셋 깨우기 42’
씨냉의 포스타입 보러가기>

 

얼마전 트위터에서 ‘탐폰을 사용하면 질 내벽이 넓어져서 여자에게 좋지 않으니 제발 쓰지말라’는 조언을 다른 여성으로부터 들었다는 여성의 트윗을 알티한적이 있었다. 또, 나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의 영페미니스트들이 개최한 ‘월경 페스티벌’의 역사***, 2016년의 ‘생리대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생리대 가격인상 논란*****,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의 생리대 빈곤문제, 재난 피해자 구호키트*******에서 생리대가 배제되는 문제, 그리고 최근의 위스퍼가 기획한 ‘여자답게’ 캠페인 광고********에 대해서 여성들이 각자의 할말을 찾고 있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다시 말할 수 있을까. 같은 월경 용품이지만 생리대와 탐폰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얘기가 다르고, 또 자신이 어떤 맥락의 여성인지 (가난한지? 미성년인지? 어떤 종류의 편리함을 욕망하는지? PMS증상이나 체형은 어떤지?에 따라 범주화될 수 있는) 에 따라 매력과 절실함을 느끼는 이슈가 다르지만 그 모든 발화들은 ‘수치심’을 배신한것에 있어서는 동일하다는 것부터 주목하고 싶다. 그 어조가 약간 웃길수도 있고 진지하고 감동적일 수도 있으며 무언가 치명적인 시행착오가 생겨날 수도 있지만, 일단은 멈추지 말고 계속 해나가야 하는게 중요하단점은 모두가 알고 있는게 아닐까. 탐폰런은 여성들이 그래야만 할 시대에 직면했을때 해볼만한 게임이다.

 


 

*세계최초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고안한 것으로,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을 아버지로 둔것으로 명성을 얻은 여성이다. 참조> 위키백과, “에이다 러브레이스”, https://goo.gl/Njt3pt, (2016.03.25)

**트위터에서 실제로 탐폰런을 검색해보면, 2014년 9월 7일부터 2016년 7월 3일까지 페미로그 계정을 제외한 14개의 개인/언론사/커뮤니티 계정이 탐폰런을 언급한 것을 알 수 있다.

***페미로그의 관련 포스팅 ‘1999.9 – 2007.(8, 9) 월경페스티벌’ 보러가기 >

****트위터 해시태그 #생리대프로젝트 보러가기 >

*****홍미은, “신제품 핑계로 생리대 가격 올려… 여성들 “면세품 맞나””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94473#.V4qQFfmLSUk , 제1392호, 2016.6.1

******변지은, “가격 인상 논란’ 유한킴벌리, 저소득층 청소년 대상 중저가 생리대 출시”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94577#.V4qYoPmLSUk , 제1393호, 2016.6.5

*******박길자, “국민안전처, 응급구호세트에 남성용 면도기는 유지하고 생리대는 제외”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95466#.V4qQ1PmLSUk , 제1397호, 2016.7.4

********위스퍼 #여자답게 멈추지마 – 태권도 선수 김소희 (KEEP PLAYING #LIKEAGIRL whisper) https://www.youtube.com/watch?v=RUxbzLW9-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