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4 13 2014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리뷰_히메유리의 탑

히메유리의 탑 ひめゆりの塔 Monument of Star Lilies | <감독> 이마이 다다시 <제작년도> 1953 <배우> 가가와 교코, 츠시마 케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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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해안가 바위 동굴 안에 사람들이 숨어있다. 군인들, 그리고 군인이 아니지만 군인처럼 대해지거나 그처럼 변해갔던 교사, 여학생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충분히 일본 사람인가? 이들은 모두 태평양 전쟁에 동의했는가? 명예롭지 못한 얼굴들이 제각각 겁에 질려있다.

“일본인 여러분 (…) 미군을 믿으십시오 (…) 그만둡시다 (…) 방공호 밖으로 나오십시오 (…) 정말로 여기에 아무도 없습니까?”

누군가의 유창한 일본말로 선전 방송이 반복된다. 아무도 말이 없고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오키나와 현립 제일고등여학교의 우에하라 후미가 동굴 입구로 달려나가다 일본 본토군 대령의 권총에 맞고 쓰러진다. 그녀는 그곳에 자신들과 함께 숨지 못한 동굴 밖의 여동생을 줄곧 걱정했었다. 그렇다면 섬을 탈출하려 했던 대 여섯 명의 소녀들과 교사 한 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해안의 모랫길을 달리다 기관총에 맞아 죽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고 변하지 못한 채 영화는 동굴 안에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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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유리 부대의 소임은 무엇이었나?
오키나와 현립 제일고등여학교의 소녀들이 1945년 4월 시작된 미일 간 오키나와 전투에서 맡게 된 보직은 없다. 간호장교나 간호병으로 정식 임명되기에 그들은 충분히 숙련되지 못했고 일본군으로부터 배급 받은 군복을 입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세라복 상의 차림으로 이마에 흰색 띠를 동여 멘 이 소녀들은 히메유리(백합)라는 이름의 부대로 불리며 선생님의 지도 하에 학급별로 전장에 배치 받는다. 참호 안에서 부상당한 병사의 잔심부름을 하고 의료처치의 시중도 들고, 밖에 나가 전투병들을 위해 오염되지 않은 물을 길어와야 하는데 오키나와의 모든 하늘에선 폭탄이 투하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학생이 해야 할 숙제가 아니었다. ‘땅만 팠는데 어느새 졸업이네’란 대사가 말해주듯이 그 정도쯤은 소녀들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님, 가족들과 떨어져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어떤 식으로 귀결 혹은 무마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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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반에 걸쳐 소녀들은 아무리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수다를 멈추지 않는다. 친구들, 선생님, 병사들과 주고받는 그 말들의 내용이 전세의 시국을 논하고 전쟁의 당위와 나아가 일본을 위해 싸우고 있는 오키나와인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정치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것은 전쟁과 죽음으로부터 덮쳐 오는 공포 속에서도 터지는 볼멘소리,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소녀들의 감각이다. 부대의 소집 당일 날, 너무나 거대한 일이 시작되고 말았다는 불안의 전조와 피난 움직임이 뒤섞여 소란스러워진 거리에서 기묘하게 마구 들떠 웃음을 멈출 수 없던 두 명의 여학생들에게 “저런 애들이 더 위험해”라고 누군가 말한다. 평화로이 민요를 부르며 다 함께 춤을 추던 날들이 멀어지고 곁에 있던 친구들이 다치거나 죽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저 두 명 중 한 명은 정신 착란을 일으켜 참호 속에 버려질 위기에 처한다. 몸과 마음에 병과 상흔을 얻어가던 소녀들 중 누군가는 ‘차라리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래도 일하고 싶다’고 한다. 한 켠에서는 음독용 청산가리를 누가 가질지를 두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는 패전 직전의 상황에서, 우에하라 후미는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고도 단순한 의견 “배고프면 누구나 그래요” 를 말한다. 히메유리들이 운반하던 밥과 자신의 칼을 바꾸자고 애원했던 부상병에게 동정심이 일어났던 것이다.

오키나와인과 일본인

그렇다면 오키나와 현립 제일고등여학교의 선생님들은 어땠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 선생님들의 모습을 주목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여선생님 역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정치적 언어로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보다는, 연민과 분노의 감정적 기제로 영화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 ‘오키나와인은 무엇을 위해 일본인과 함께 미국을 대적하고 있는가? ’란 질문 앞에서 무력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인 나로서는 이점이 낯익은 장벽을 마주하는 것처럼 갑갑했지만, 195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 속에선 분명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져오고 싶은 저 질문을 다루기 위해 남선생님들의 대화로부터 뭔가를 알아차리고 영화의 바깥도 바라봐야 한다.

“사이판 전투에서는 간첩으로 몰렸다죠?” (…) “싸움이 밀리면 우리에게 불만인거죠”

본토로 보낼 편지를 쓰는 일본군 틈에서 담배를 피우던 선생들의 짧은 대화이다. 이 남성들의 처지는 하찮은 보조병력, 2급의 인간, 오키나와 태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영토전체가 섬들로 이루어진 열도의 나라 일본이, 그의 최남단 섬인 오키나와에게는 어째서 이런 위계를 만들어 차별 대우했는지 이 영화는 자세히 설명하진 않는다. 이기기 위해서는 모두가 일본인이 되어야 하지만, 질 것 같으면 오키나와인, 간첩으로 불려야 하는 당위는 어디서 왔을까? 원인을 드러내기 위해서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속 배경이 되는 태평양 전쟁은 미국이 이겼고 3개월 후 일본은 종전 조칙을 발표함과 동시에 패전국이 되었다. 이후로 이 섬은 6년간 방치되다가, 1951년에서야 미/일간 강화조약 제3조에 의해 ‘류큐열도 미국민정부’라는 이름의 신탁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사이판, 괌, 필리핀, 이오지마에서 패배한 일본 최후의 보루 역할을 떠맡았던 오키나와는 이 시점부터 일본의 ‘버린 돌’ 취급을 받게 되었고 27년 후인 1972년경 정식 반환되기는 했으나, 현재까지도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전용시설의 약 74%가 모두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는 형국이다.

여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일본 최초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토속 언어를 금지 당하고 본토식으로 개명 당해야 했던 오키나와인들이 자신들을 ‘우치난추’, 본토의 일본인을 ‘야마톤추’라고 분리해서 보는 관점은(그것이 사대주의적이든, 저항적인 것이든) 시대에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소멸되기 어려워 보인다. 전쟁 직후 생존한 이 섬의 현민들은 오키나와 전투가 끝난 후 미국 관할하의 보호구역으로 소집됐고 ‘여자는 강간당하고 남자는 살해당한다’는 일본군의 자살강요를 동반한 엄포와 달리 적어도 살아남았지만 그 PTSD, 정신적 상흔은 현대에 와서도 충분히 소거되지 못했다. 당시에 몇몇은 암벽 위에서 투신하고, 친족들간에 벌어진 살육으로 다치거나 죽고, 숨어있던 참호 안에서 집단자살을 하거나 전투에서 죽어나갔다. 이 역사가 대대적으로 재조명되며 사과와 책임의식에 대한 목소리가 드높아지기 시작한 것도 2009년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이후 에 와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1995년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 2004년의 ‘후텐마 헬기추락사건’ 처럼 미군기지로부터 오는 치안상의 위협에 대해 일본정부는 오키나와를 여전히 버린 돌 취급하며 국가로서의 합당한 개입, 책임을 방기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쯤 되면 히메유리 부대의 여학생들과 친분이 생긴 본토의 생선장사 출신 병사가 ‘줄건 이것밖에 없다’며 안주머니를 더듬어 만지는 게 ‘독약’이란 설정도 꽤나 일리있는 것이다. 사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는 맘씨 좋은 아저씨, 평범한 일본인일지 몰라도 그는 전쟁과 군국주의라는 고문기계 안에 갇힌 수동적 개체에 불과했고, 이는 우에하라 후미를 총격한 본토군 대령도 마찬가지였단 점에서 공포가 자라난다. 그 생선 장수는 살아서 본토로 무사히 귀환했을까. 그 대령의 최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할복자결로 군대 조직을 와해시켜 오키나와 전투를 일본의 패배로 끝맺는데 일조한 실제 인물, 일본 제32군 사령관 우시지마 미쓰루 중장의 최후와 비슷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