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5 09 2014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리뷰_Abuse of Weakness

Abuse of Weakness | <감독> 카트린느 브레야 <제작년도>2013 <배우> 이자벨 위페르

시놉시스 >


 

의족과 모드 쇤버그

장애인이 된 모드가 걷기 위해서는 지팡이와 의족이 필요하다. 두 가지 물건 모두 마비된 몸 때문에 흐트러지려는 자세를 바로잡는 것을 돕기 위한 의료장비이지만, 의족의 경우에 그것은 모드가 일상적으로 착용하던 다양한 종류의 신발을 더 이상 신을 수 없음을 의미했다. 모드의 앙상하게 마른 몸은 하이힐은 커녕 스니커즈 하나 내키는대로 신을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모드는 그림을 그려가며 의족 제작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설명한다. 가죽의 색깔이나 버클의 모양에 대해 이것저것 주문사항이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찌되었든 예쁘게 보이길 원한다고 말하는 모드의 태도는 일견 유난스러운 겉치레처럼 비춰질지 모른다. 하지만 모드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로 인해 신체적/정신적으로 난파 당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빌코 같은 남자와는 아무런 접점도 만들지 않았을 것처럼, 이 부츠화된 의족은 모드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확인시켜주는 물체인 동시에 묘하게 여성적인 것이다. 빌코가 무릎을 꿇고 신기기 까다로운 부츠, 의족에 그녀의 다리를 넣고 버클을 채우는 장면에서 모드의 얼굴에 재밌어 죽겠다는 코웃음이 생긴다.

나쁜 사랑과 빌코 피란

만약 모드가 남자이고 빌코는 여자였다면 이 영화는 진부했을 것이다. 빌코의 사기 수법이라 할만한 장치들이 상당히 교묘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무계획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가 속칭 제비의 전형성을 따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드가 빌코로부터 영향 받는 매혹 못지않게 역방향으로, 모드로부터 빌코에게 전이되는 긴장감도 있었던 게 아닐까. 처음부터 빌코는 모드에 의해 픽업되고 기획된 존재에 가깝다. 새벽에 우연히 보게 된 티비 속 토크쇼에서 자신의 거나한 사기행각을 떠벌리고 있던 남자를 모드가 자신의 집/스튜디오로 불러냈을 때부터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불순한 계획이 완성되 있었던 것 같진 않다. 유명한 영화 감독인 모드로부터의 호출에 대한 모호한 호기심과 먹잇감을 물색하는 사기꾼으로서의 자세, 그리고 스스로를 시험대 위로 올려놔보는 과시욕 외에 딱히 내세울게 없었던 빌코에게 제안된 것은 어떤 이야기의 배역이었다. 남편으로부터의 신체적 폭력으로 피범벅이 된 새 신부가 신방의 침대에 누워 “나는 아프지 않아”라고 말하며 끝나는 이야기. 이것은 이 영화의 감독인 카트린느 브레야가 각색하려고 했던 그 자신의 소설 ‘나쁜 사랑’의 일부 인데, 흥미롭게도 빌코 피란 역시 카트린느에게 거금을 사기쳐 빼돌린 실제 인물 ‘크리스토프 로칸코트’를 모델로 한 배역이다. 하나의 소설 속 남주인공, 한명의 사기꾼, 그리고 이 둘을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빌코 피란, 다시 그를 연기해야 하는 실제 남자 배우 쿨 쉔이 있는 것이다. 소설 속 새 신부가 왜 자신이 당한 폭력을 아프지 않다고 말했는지, 모든 쇤버그와 카트린느 브레야가 어째서 거금의 돈을 사기꾼들에게 순순히 넘겨줬는지에 대해 영화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은 단지 모드 쇤버그의 급격하게 망가진 신체와 그 이후의 기행들, 친밀한 사람들로부터의 소외상태, 애매한 회복 의지와 감정적 혼란을 볼 수 있고, 그것들에 질질 끌려 다니기를 스스로 방치하는 그녀의 행동을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남자들은? 그들에게는 좀더 명료한 문제, 돈이 연루된 욕망이 있다. 아픈 사람은 병원의 환자이지만 나약한 사람은 누군가의 피/가학적 연인이 될 수도 있다는 간단한 계산이 그 사기꾼들에게 사업적 영감을 주었다는 가정하에 그렇게 보인다.

65만 유로의 수표

“내가 썼지만 내가 쓴 게 아니야”라고 모드 쇤버그는 말한다. 그녀의 공적 지위와 사적 지위는 극심하게 분열했고, 성공한 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아와 사기꾼의 가짜 연인으로서의 자아가 서로를 모른 척 하기로 했단 말인가? 아니면 사악한 누군가가 모드 쇤버그의 뇌를 은밀히 강탈해서 그녀가 원치 않는 모드 쇤버그를 연기하고 있었단 말일까? 호화로웠던 집이 팔려 없어지고, 빌코가 갚으러 가져왔다던 돈도 하룻밤 만에 사라졌다. 모드가 이뤄온 명성과 재산이 물거품화되 직전에 그녀는 긴 수면마취에서 깨어나듯이 태도를 바꾼다. 그녀가 거부하고 경고하거나, 적어도 불쾌해졌어야 할 빌코의 갈취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견해가 만들어지지 못했던, 기나긴 잠이 가져다주는 쾌락과 망각의 시간이 삽시간에 끝난 것이다. 65만 유로짜리의 도박이 끝난 것과도 같다. 마지막으로 새벽에 들이닥친 빌코를 냉랭한 태도로 티비 화면을 꺼버리듯이 내쫓은 모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침까지 숙면한 후 일어나 자신의 어시스턴트 동료이자, ‘내 사랑’이란 애칭으로 부르던 에제에게 거는 전화였다. 그녀는 여전히 의존적이고 자기 자신과 잘 못지내는 인간이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낯선 사기꾼이 아닌 적어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 옆에 아이처럼 누웠고, 다시 한번 잠에 빠진다. 이후로 모드 쇤버그가 아무런 보조기구 없이 홀로 버텨야 하는 시간은 가족과 친구들, 변호사로부터의 질책, 비난들과 기계적으로 흘러내리는 눈물로 채워진다. 그녀가 사태의 수동적 피해자로 자신을 증명하기가 모호하고 과연 빌코가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문점 때문에, 어머니를 금전적으로 도와야 할 당위에 대한 반발심과 황당함, 혐오감마저 느끼는 성인자녀들의 질문공세가 특히 그녀에게는 전에 없던 고역이 되었다. 한없이 보호받아야 할 결손, 가녀린 여성성을 확인시켜주던 예쁜 의족과 기괴하게 오그라든 왼쪽 손도 더 이상 카메라에 잡히지 않고 그저 곤경에 빠진 늙은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