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21 가장자리로부터 사방으로 퍼지는 말들의 소음: ‘출판산업 직장 내 성폭력 해결을 위한 집담회’ 참석 후기

이 글은 민우회 회원공간의 자유게시판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http://www.womenlink.or.kr/free_boards/8067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의 미디어스 기사를 보아주세요.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List.html?page=1&total=3&sc_section_code=&sc_sub_section_code=&sc_serial_code=&sc_area=A&sc_level=&sc_article_type=&sc_view_level=&sc_sdate=&sc_edate=&sc_serial_number=&sc_word=%BD%DC%BE%D8%C6%C4%C4%BF%BD%BA&view_type=sm

이하, 집담회에서 특정 패널님들의 발언과 공유되는 부분은 따로 (*아무개) 라는 식으로 표기해두었습니다.


 

1. 성폭력의 위험으로부터 노동 환경을 지켜내는 안전장치는 호신술과 다르다.

자기 관리가 곧 자기 계발이며 노동이라는 단어는 촌스럽고 민망한 것으로 기피되고 아무것에나 무턱대고 ‘자유’라는 수식을 갖다 붙이는 오지랖이 환대 받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의 성 정치 지형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여직원으로서, 사내에서 성희롱·폭력의 위험을 자기 관리와 몸조심의 문법으로 완벽하게 따돌릴 수 있는 ‘자유’는 여전히 소수의 여성들에게만 편재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째서 다수의 한국 직장인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손쉽고 빈번하게 성희롱·폭력의 표적으로 지목 당하면서도, 문제의 발생 원인을 스스로의 몸과 행동거지에서 찾아야 하는 관습에 익숙해졌던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이 여성성과 여자의 관념적 특성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녀들이 여직원으로서 배치된 노동의 공간 구석구석으로 섬세하게 파고들 때에 보다 실제적이고 의미 있는 사내 성폭력 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직원들은 ‘직원’이 되기 위해서 갖은 방식으로 스스로 훈육해왔고 그 과정에서 외모 꾸미기는 절대적으로 빠질 수 없는 항목이었습니다. 화장법, 옷차림, 향기부터 몸의 자세와 미소 짓고 말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의 증명 사진으로 각인 되어 이력서와 업무 평가서를 빛나게 하기 때문에, 외모 꾸미기의 등급표는 그녀들의 인생을 살벌한 강도로 좌지우지 해온 것입니다. 근대 이후의 가부장제가 역사적으로 권장해온 남성성은 남성적인 외모를 사내에서 전략적으로 과시할 필요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은 근육질 몸매나 다부지고 강인한 턱선, 큼지막하고 곧게 뻗은 코, 부리부리한 눈매, 풍채 좋은 체격과 신사다운 옷차림을 결정적이고 중대한 업무 평가 요소로서 의식하거나, 눈치 보며 가꾸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한 맥락의 성별 권력의 지형 속에 던져 지는 여직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외모 꾸미기에 대한 노력 때문에 남직원들보다 더 빈번히 성희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는 경향성을 띄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번듯하게 인정받고 싶고, 승진의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은 직원이라면 누구나 빠질 수 없는 회식·뒷풀이 자리처럼 사무적 분위기의 긴장이 일 순간 느슨하게 풀어졌을 때 그 경향성이 끌어들이는 위험도는 한층 증폭되어 ‘함부로 수작을 걸어도 내심 좋아할 사람’으로 취급될 수도 있겠죠. 즉, 여직원들은 직장동료로서만이 아니라 애인의 역할도 기대 받는 ‘성애의 대상’으로서도 대면 당하는 상황에 부닥치는 것이지요(*민우회 활동가 바람님). 또한 저런 식의 사무실 밖의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일터에서 성적인 언어희롱과 신체접촉의 시도를 직면하며 출판계의 경우 직접적인 회사 관계자가 아님에도 클라이언트로서 만나는 저자와 역자로부터 역시 성희롱의 위협을 겪습니다.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박진희 분회장님)

이런 상황에서 “나대지 말고 눈치껏 알아서”라는 암묵적인 처세술은 그 모호하고 빈약한 논리를 직원들이 받아들이는데 실패할 시에, 외모 꾸미기에서 나아가 피해자의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성 생활의 기질 또한 성폭행 피해 원인의 알리바이로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고 반 인권적인 것이지요. 차라리 여직원들을 사내 성폭력 위험에 취약한 계층으로 규정 지어 ‘호신 무술 수료증 필수’를 채용 조건에 명기한다거나, 여직원들 모두가 우주 비행사들이나 입을법한 노출 없이 꽁꽁 싸맨 점프 수트만 입고 노 메이크업 얼굴로 출근 했다면 좀 더 사태는 간단했겠지만…… 이런 가정은 저의 비소 섞인 농담이자 끔찍한 공상일 뿐, 이 글을 쓴 저와 읽고 있는 여러분은 그런 일들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업체들은 그런 여성을 회사를 위한 인재로서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여성 직장인으로서의 외양을 갖추는데 성공한 모든 여성들에게 자율적인 저항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건 아닙니다만 (오히려 저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그 권리와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공정하지 못했던 게임의 규칙 안에서 ‘여직원’이라는 의복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그들 모두가, 노동유연화라는 명분 하에 부당해고의 위협과 함께 정규직 정도의 숙련도와 노동강도를 형식적으로 요구 받으면서도 계약서면상에서는 비정규직과 외주작업자로 호명 당하는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메이데이 출판노동자 계영님), 서슴지 않고 지금 당장 피투성이 잔 다르크의 싸움방식을 받아들일 수는 없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단 것이지요.

강조하건대, 사측은 피해자의 몸 위에서 증명 불가능한 알리바이를 수색하는 헛짓거리를 멈추고 노동 환경을 성폭력·희롱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야 할 공공의 일터로서 구성원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여직원 모두가 호신술을 완벽하게 마스터하여 범죄의 위협을 물리칠 수 없고 회사도, 국가도 그것을 가르칠 수 없는데 가해자는 ‘분명하게 저항하지 않았음’을 명목으로 손쉽게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하려 들기 때문에, 사내에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공적 차원의 안전 장치들이 요구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안전장치의 항목에는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할까요?

1)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실태조사위원회가 집담회에서 발표한 ‘2014 출판노동 실태조사 간략보고’에 따르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고 실효성이 있었음 15%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으나 실효성이 없었음 37%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지 않음 48%

위와 같습니다. 출판 노동계에 한정해서 더 질적, 양적으로 모자람이 없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외의 친 여성주의 단체들, 성폭력 관련 상담소들의 자문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2) 출판계뿐만 아니라 각 사업체, 노조 별로 성희롱·폭력에 대응하는 공식적 매뉴얼을 구비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감시할 대책위가 꾸려져, 피해자가 침묵하거나 회사 밖으로 쫓겨가거나, 다른 직원에게 개인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해야 하는 어려움을 불식시켜야 합니다. 그에 해당하는 예는 아래와 같지만, 그 메뉴얼의 내용은 지속적으로 검토·수정되어야 할 것이며 1)과 마찬가지로 그 과정에 노조 외부의 단체들의 자문을 적극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의 “노동조합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메뉴얼”
http://hjyd.nodong.net/xe/index.php?mid=data_doc&category=32186&document_srl=56515
금속노조의 “성폭력 예방 및 사건 대응 매뉴얼”
http://hjyd.nodong.net/xe/?mid=data_doc&category=32186&document_srl=82681

2. 사내 성폭력 사건의 해결방식을 환경미화의 수준에서 접근할때, 2차 가해가 발생한다.

집담회 참석과 그 전후에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며 제가 계속해서 받은 인상은 사측이(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시형 (전)대표가) 가해자와 피해자들 못지 않은 강한 수치심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가 겪어온 고통에 공감하지 않으며, 가해자를 비난하고 탓하지도 않는 대신, 회사의 훼손된 명예와 그 이미지를 염려하는 데에 가장 큰 주의를 집중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인턴이었던 피해자에게 17개월의 수습기간을 불안정 노동의 굴레로서 덧씌우고, 회사의 중역이었던 가해자를 명확히 징계하는 대신 자발적 사표 수리 이후 사외 이사라는 보직을 주어 계속 제 식구 챙기기를 멈추지 않았던 쌤앤파커스는 아래와 같이 2차례에 걸쳐 형식적으로 할 수 있는 사과는 다 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성추행을 ‘프리허그’로 변명한 샘앤파커스 비난 여론>
http://insight.co.kr/view.php?ArtNo=6764
<성추행 논란 쌤앤파커스 결국 대표명의 사과문 발표…누리꾼 “만시지탄” : 수습제도 개선·성폭력 재발방지 약속>
http://www.moneyweek.co.kr/news/mwView.php?no=2014092307508048656

비록 코미디 대사에 가까운 변명과 피해자 중심주의 대한 이해부족의 수준이 드러나는 글이었으나, 여론을 극심하게 의식한 듯이 자신들 딴 에는 그럭저럭 내놓아야 할 말들 만을 골라했다는 인상을 저는 받았습니다. 문제는, 저 정도 수준의 ‘말’조차도 충실히 이행되어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납득할 만한 몸체, 실질적인 조치가 반드시 함께 해야 의미가 있었을 말이 거짓말로 전락했습니다. 박시형 대표, 쌤앤파커스의 직원들 모두가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11월 11일, 피해자 본인이 포함된 언론노조 출판분회, 그린비 분회, 출판노동자 2-30명, MBC와 미디어스 취재진이 공식적 기자회견을 마치고 항의 방문을 시도하자, 쌤앤파커스의 사옥은 일순간 2차가해가 신경질적으로 난무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 : 그린비 분회의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 관련 언론노조 기자회견(11월 11일) 후기!’ https://www.facebook.com/greenbeelu/posts/373245999517807)

“당신이 봤냐”는 말로 사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들고 “우리도 힘들다”라는 말로 회사와 직원들의 자기연민을 피해자의 고통의 수준과 동급으로 놓으려고 억지부리는 꼬락서니가 드러났던 그 공간은, 피해자에게는 “그래도 출판 마케터가, 마냥 설레는 나의 직업이었습니다.” (*책은탁 전 쌤앤파커스 마케터님)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일터이기도 했었습니다. 책은탁님이 집담회때 보여주신 입사 후 한달 째 초상 사진 속에는 분명 자신의 일과 직장에 대한 애정이 엿보였으나, 40kg 남짓한 앙상한 몸과 자살 위험수위가 높아진 신경상태를 갖게 된 현재의 모습은 “피해자의 손상된 인권을 피해 이전으로 온전히 회복해야 한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국장) 라는 기조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운 싸움의 과정이라는 것을 저도 그날 가까이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이름은 여러 개의 가명으로 갈라지고, 피해자의 얼굴 위에는 모자이크가 덮여지거나 얼굴 그 자체가 사진의 프레임 밖에서 사라지는 것이 한국 언론의 기본 태도입니다. 직장에서는 책상을 치우고, 사무실 비밀번호를 바꾸고, 새 구인광고를 내며 피해자를 유령 취급하거나 (*민우회 활동가 바람님) 온갖 종류의 보복성 징계를 내리고 직장 내에서 따돌리며 정신병자 취급하거나 (*경북 김천 직지농협 여직원 성희롱 사건의 당사자, 김미숙님) 하는 ‘나쁜 서사’가 사건 이후에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 3가지 전형적인 서사는 모두 2차 가해로, 이 때문에 피해자는 회복되기는커녕 점점 더 불리해져 가는 싸움에 던져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반면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징계의 최고수준은 ‘퇴직’인데 이조차도 ‘희망 퇴직’으로서 그 동안의 회사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으며 아름답게 미화되는 경우가 부지기수 입니다. (*민우회 활동가 바람님) ‘미화’라는 것이 섬뜩하고 문제적인 부분입니다. 사업체에서 성폭력사건 이후 피해자와 피해자의 편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제기들을 쓰레기나 오물, 병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는 반면 가해자의 실수는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화해서 ‘회사’라는 환경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죠. 왜 피해자가 숨겨지거나 숨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피해자는 소외되어 있습니다.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받았고 어떠한 방식의 사과를 원하며, 또 어떻게 회복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보다 사업체와 가해자가 혈안이 되있는 것은 ‘이 개판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아름답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신체를 동의 구하지 않고 허락 없이 만지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진솔한 생각이 가해자 진술서에 담기지 않고 “아- 제가 그 동안 뭘 하지 못했는데- 학교 다닐 때는 여성학 강의를 들었고 그런걸 부르짖기도 했고…”라는 식의 황당한 구술이 들어가며 (*메이데이 출판노동자 계영님), 본인들 회사에서 그런 폭력적인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을 리가 없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출판하고 있기 때문 (*민우회 활동가 바람님)이라는 안하무인의 태도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위의 두 가지가 제가 한 달여 동안 추스릴 수 있었던 할말입니다. 이제 저는 1인 시위를 할 수 도 있고, 쌤앤파커스에 항의 메일을 보낼 수도 있고, 다른 성희롱·폭력 사건으로도 연대를 결심하거나, 또 민우회 안에서 이런 이슈들과 관련하여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찾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저는 이 글이 어떤 행동들의 첫머리에 왔으면 좋겠고, 그 자체로 완결 되있기 보다는 열린 채로 끝나기를 바래서 아래의 3가지 질문을 불균질하게 던져보았습니다.

1. 무엇이 증거 불충분인가?

바람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상당수의 성희롱·폭력 사건 재판에서 ‘증거 불충분’이 패소 원인이 되어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증거 불충분의 원인은 피해자의 소극적인 태도에만 있는 것일까요?

메이데이 출판노동자 계영님의 경우 목격자가 있어서 현재 사건대책위가 꾸려질 수 있었고, 경북 김천 직지농협 여직원 성희롱 사건의 김미숙님의 경우 녹음 파일이 있어서 증거로서 경찰에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의 책은탁님의 경우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형사재판에서 패소했습니다. 이 세 경우 모두 자신들이 마련한 ‘증거’가 ‘증거’로서 대우받지 못할 위험에 쉽사리 처한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그렇다면 법정에서는 무언가 포르노에 가까운 엑스레이 사진이라도 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모든 피해자들이 사립탐정이라도 항시 고용해 두었어야 했을까요? 또한, 더 문제적인 것은 가장 강력한 증거로서 인정되어야 할 피해자의 진술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할 수사관들에게서 발견됩니다. 기록을 하지 않거나 주먹구구식으로 해놓기 때문에 증거불충분이라는 법정의 판단을 더 돕고, 강화해주며, 피해자를 점점 더 불리한 싸움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꼴인 것이지요. (*민우회 활동가 바람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진짜로 피해자를 돕고자 하는 것인지의 여부가 증거 불충분입니다.

2. 원망의 화살은 미꾸라지 한 마리에게로?

계영님께서 지적해 주신대로, 출판계에서 성폭력 사건 이후 2차 가해를 동반한 피해자 업계 퇴출 및 가해자 감싸기가 만연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네트워크를 공고히 만들어 왔다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형님아우하면서 회식자리에서 ‘으쌰으쌰’하는 이유는 친목이 곧 비즈니스이기 때문이고, 위력자의 말 한마디에 매출지수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에 이들에게 성희롱·폭력을 둘러싼 문제제기, 정치적 스캔들은 하나의 심각한 실제적 위협이 된 것이지요. 저는 ‘젠더는 절대로 혼자서 작동하지 않는다’라고 배운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들의 남성성이 ‘성 인지 감수성’을 교과서서적으로만 받아들이고 몸으로 체현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남자로서의 권력을 획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히스테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리한 출간 일정, 과다한 잡무, 비효율적 업무 시스템으로 인한 ‘시간외 근로의 만연’과 근로계약서 작성을 지키지 않고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박진희 분회장님) 어제의 정규직이 오늘의 외주작업자로 내몰리는 고용불안정, 책 시장의 판매지수 전체적 감소, 등등의 상황에서 그 모든 스트레스가 여직원들에 대한 성희롱·폭력으로 발산되는 것입니까? 저는 절망을 목도합니다. 진보적이고 우아하게 연출되는 출판 노동의 지속을 위해서 피해자가 미꾸라지 한 마리로 몰리면서 업계에서 추방되는 사태의 근원에 저 지극히 단순한 작동원리가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쌤앤파커스 성희롱·폭력사건의 해결을 촉구할 때 출판계 노동환경의 전반적 비극에 대한 문제제기도 함께 합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당장 성희롱·폭력사건의 예방 교육과 사건 사후 가해자 재교육을 시작합시다. 물론 이 두 가지를 함께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3. 패소 이후에 ‘우리’는 패배해야 하는가?

집담회 말미에 박진희 분회장님께서 피해자들이 누구와 함께 싸우고 있는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편에 서있는 것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피해자가 ‘우리’의 일부로서 포섭되고 함께 말하는 목소리들이 커질 때, 더 많은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계속적으로 터져 나와, 그렇게 모여진 이야기들이 ‘가장자리’에 한정 되 있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패소 이후의 억울함과 피해자에게 가장 공포스러울 것은 고립감이 아닐까요. 바람님의 “질 수도 있다”라는 말과 책은탁님의 “해결이 되어야 치료가 되죠. (…) 저도 연애하고 싶어요” 말이 동시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되도록 이겨야 하는 싸움을 만들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동원해야겠지만 진다 해도 피해자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증거불충분이든 뭐든 그 패소 판결의 사유에 상관없이 피해자가 포기해야 할 것은 자신의 생애 그 자체나, 일에 대한 애정, 잘못은 내가 아니라 너희에게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피해자의 포기상태를 만들지 않는 것만큼은 판결보다도 ‘우리’가 더 잘할 수 있고, 잘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