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안 – 트페미 – 영페

메갈리안과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이 90년대의 영페미니스트들과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라고 봅니다.

1) 웹상의 여성혐오를 대면하는 태도 : 역벽치기하듯, 두려워하기보다는 웃음거리로 만들어 폭력을 되돌려줍니다. 

2) 페미니즘으로 진입 루트 : 불매하고,  예쁜 굿즈사고/만들고, 기부하고, 씹치패고, 추천과 알티좀 하다가 여기저기 모임과 강의도 가봅니다.

특히 2)번에 대해서 낯설어하고 심지어 삐지는 페미니즘 선생님들이 계신데, 메갈리안+트위터 페미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이건 연구자들의 중요한 몫) 수행적으로, 그리고 그 어떤 시대보다 개인적으로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해나가고 있습니다. 학내 여성주의 단위들끼리의 연대회의와 토론회가 자연스럽게 열리고 닫히던 시절이 다 저물었고 지금은 여학생위원회, 여성학 전공마저도 소멸위기에 처한 2015이니까요. 게토화된 시대적 상황을 따라간 유전변이 같은 걸까요. 잘 모르겠지만, 좀 거꾸로된 순서대로 경험의 부재를 각자의 방식대로 메꾸며 점점 더 업그레이드 되리라 응원합니다.

반면, 영페들은 공격적인 태도가 있었음에도, 굉장히 진지하고 치열했습니다. 퀴어,노동,환경,장애,전쟁,성폭력 다 건드렸고 학내 여성주의단위들이 다루는 이슈들은 절대 가볍지 않아요. 그리고 립스틱 페미니스트의 자취가 거의 없었다는것도 결정적 차이입니다. 씹치=사이버 마초, 김치녀 혐오=사이버 성폭력 >이게 90년대의 방식이었습니다. 몇몇 재기넘치는 대응과 사법고소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미러링’을 고안하진 않았습니다. 그건 ‘남자의 방식’이었고,공격당한다는 것이 두려웠고, 수적으로도 항상 열세였으니까요.


 

페미니스트 김신명숙, 사이버 테러 가한 네티즌 고소
“내가 악의 화신 ‘볼드모트’라니요?”

“그에 대한 일부 마초들의 사이버 테러 수준에 달하는 비방은 10여 년간 계속돼왔다. 그 발단은 1998년 군가산점제 찬반 논란을 다룬 KBS 1TV ‘길종섭의 쟁점토론’에 패널로 참여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한 때부터다. (…) 네이버의 한 블로그에 ‘Rotrasius’가 작성한 ‘김신명숙 본거지를 찾았다. 위대한 성전을 준비하라’를 읽어보면 갑자기 소름이 끼친다. 히틀러 시대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와 음악에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가득한 가운데 “양성평등, 아니 여성 우월주의를 주장하며, 여성 가족 복지를 주장하며 우리들을 억누르고 국가를 퇴폐시키고 많은 이들을 죽게만든, 날 정신병까지 걸리게 만든!! 그 사탄의 마귀집단의 김신명숙이 여기있다!” 등의 문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 재미있는 사실은 남성들이 역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사건이 일어나거나, 특히 셧다운제나 음주 관련 가사 금지 등 여성부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마다 김신명숙씨에 대한 사이버 테러가 격렬해진다는 것이다.”


 

‘영 앤 영거 영원히 : 해방되어 아름다운 그녀들의 이야기’, (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64p

“사이버 마초를 대응하기 위한 여성 네티즌, 그룹들. 이렇게 해서 시스터본드를 만들어서 메니페스토 같은 거 만들고, 규칙 만들고, 대응하는 방법들 같은 거 공유하고 토론회 하고 이런 거 했죠. 그런 것들을 하면서, 달나라 딸세포 같은 경우에는 그런 식의 공격들이 들어왔을 때 휴지통으로 바로 보내서, 휴지통에 글들을 모아두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래서 그 휴지통의 게시판 배경음악이 계속 물내려가는 소리에요. (권김현영)”


 

‘영 앤 영거 영원히 : 해방되어 아름다운 그녀들의 이야기’, (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65p

“월장 첫 기획을 도마 위의 예비역으로 잡을 때 그 주제가 그렇게 호응? 반응을 일으킬 줄은 몰랐어요. (..) 그때 사이버 공격이 굉장히 심했어요. 웹페이지도 너무 많은 조회수 때문에 문이 닫혔었고, 그것도 해결하고 나서 사이버 성폭력이(..)  게시판이라던가 이메일로 굉장히 많이 이루어졌죠. 그래서 저희가 사이버성폭력을 공론화시키게 되었고 (..)남자들이 잘 아는것을, 성을 매개로한 언어폭력을 했을때 다른 언어폭력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을,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그들은 성공했죠.”

“저희가 거의 대응을 포기했던 것은 맞아요. 너무 그 당시 공격의 수나 이런 게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고, 특히 부산대 자유게시판 같은 정도에는 쏟아지는 남학생들의 글들에 대응을 하거나 그런 것은 거의 포기했죠. (..) 그 때 진중권씨가 부산대 자게에 글을 쓰려면 학생이거나 외부인사로 가입을 해야 되거든요, 가입을 하고 뛰어들었어요. 애들을 하나하나 처치하는 거 보면서 되게 많이 배웠어요. (..) 아무래도 남자고 지식인이고 군대경험이 있고(..) 그 때 굉장히 열심히 하셨어요. 진중권씨가 글을 다는 속도를 보면 이분은 하루종일 이거만 하고 있나봐 컴퓨터 앞에서. 이것을 내 일로 삼았는지 취미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우선순위로 두고 공격을 하는 거죠.” (박김혜정)